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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danbisw.tistory.com

 

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 몰입

 

황농문

2007. 12. 10 / 랜덤하우스코리아

 

 

 

 

 

 

얼마 전, 황농문 교수의 책, “몰입”에 몰입해버렸다.

 

몇 달 전부터 아무리 연구실에 앉아있어도 집중이 되질 않고 망상과 불안에 빠지는 시간이 너무 많아졌다. 하루하루가 어쩔 줄을 모르게 흘러가는 것을 몸으로 느끼면서 심한 자괴감에 시달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찾은 힐(heal)포션이 바로 이 책이었다.

 

여담으로, 나는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다. (아니, 않아왔다.) 자본주의 시대의 서점에는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출판되고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다. 나는 가끔 그것을 혐오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개인에 집중하면서, 왜 더 열심히, 무슨 환경이라도 뛰어넘기 위해 죽어라고 뛰지 않느냐고 질책한다. 성공신화를 포장하여 재생산하면서 ‘봐, 너가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어’라고 세뇌한다. 개인, 나 자신에 대한 천착. 그것이 심해지면, 때로는 개인을 둘러싼 사회구조적인 결함과 정작 썩은 ‘뿌리’들을 간과하고 정말 중요한 문제들을 잊어버리게 됨을 느낀다. 사실 개인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 그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는 충분히 알고 있고, 많은 가치 있는 자기계발서들을 존중한다. 단지 그것에 빠져버리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고 싶어했다는 편이 맞을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합리화에 가까운 여담일 뿐, 사실은 스스로의 자존심 아닌 자만심에, 자기계발서가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남의 얘기를 들을 필요 없이, 많은 일을 알아서, 혹은 열심히 해왔다는 근거 없는 자신이 있었는지? 그런 책들에서 한 번도 감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냥 치기어린 자존심에 먹고 살던 나도, 이번엔 졌다.

 

이 방만한 정신을 추스릴 수 있는 자기계발서 한권이 절실해지는 순간이 온 것이다. 한 2-3년 전인가 수업시간에 상담전공의 교수님이 황농문 교수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몰입의 대가로 자신이 직접 몰입에 빠져들 수 있는 체계적인 단계를 개발했다면서. 흥미롭지만 당시에는 쉽게 지나쳤던 기억이 절박함 앞에서 강렬히 다가와, 손에 잡자마자 순식간에 먹어치우듯 읽어나가게 되었다.

 

 

스스로 돌아보자면 살아오면서, 몰입 경험을 적잖이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피아노를 치면서, 책을 읽으며, 혹은 공부를 하며, 수많은 활동에서 시간이 가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며 나만의 시공간에 빠져버린 순간순간들이 모두 몰입일 것이다.

 

중에서도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읽고 쓰는 활동들에서 느끼는 무언가, 잠들면서 일어날 때까지 그 생각을 하고, 꿈에서도 나오고, 앉으나 서나, 밥을 먹다가도 생각하는 경험. 다른 것들을 다 잊고 그것에만 빠져 있다가, 그러다 무언가가 떠올랐을 때 마구 써내려가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희열. 비록 미약한 수준이라 할지라도 몰입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궁극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 황농문에 따르면 종교적 감정, 영적 감정 같은 그것을 느꼈고, 그랬기 때문에, 사랑했고 사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많은 것들 중에서 지금 이 길을 선택했다.

 

뭐, 어떻게 되었건 여기에 앉아있게 된 시작은 그랬었다.

 

몇 달 동안 잊고 지냈던 그런 경험들을, “몰입”이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사실 과거의 경험들은 간헐적으로, 정말 의지와 상관없이 우연한 기회에 하고 싶은 것이 발견되고, 그게 또 순전히 재미있어서 몰입하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몰입”은 그 경험을 능동적이고, 체계적으로 ‘유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말해준다.

 

 

황농문은 말하는, 진정한 몰입에 이르는 다섯 단계는 이것이다.

 

1. 생각하기 연습: 문제에 대해 하루 20분씩 생각

2. 천천히 생각하기: 2시간씩 생각

3. 최상의 컨디션 유지: 하루 종일 생각

4. 두뇌 활동의 극대화: 7일간 생각

5. 가치관의 변화: 한 달 이상 생각

 

말하자면, 어떤 한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과 강도를 워밍업부터 시작해서 고도로 높여가는 단계인 것이다. 깊은 생각으로 빠져들며 몰입을 지속할 때 아이디어가 샘솟는 순간이 오고, 궁극적으로는 최상의 삶에 대한 깨달음마저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끝에서 느낄 수 있는, 자아실현 단계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최고의 경험’이자 ‘행복의 절정’, 그것이 바로 몰입이다.


 

 

나는 내 멋대로, 몰입을 세 가지 키워드로 받아들였다: Relax, Think, Exercise

 

Relax: 우선 몰입을 위해서는 생각에 빠져들기 위한 최상의 컨디션인 편안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고 생각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발의 준비를 기하도록. 편안하게.

 

Think: 다음은 깊은 생각이다. “Work hard하지 말고, ”Think hard“하라는 것은 진리다. 특히 공부를 하는 사람은 Think hard 없이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다.

 

Exercise: 마지막으로, 몰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은 운동이다. 말 그대로 땀을 흘릴 수 있는 육체적인 운동 말이다. 몰입의 맹점은 너무 집중한 나머지 식음전폐는 기본이요, 세상의 흐름이 멈춰버린 것 같은 깊은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건강을 위해 잠시 생각의 고리를 끊어줄 수 있는 운동은 필수다. (이 부분은 나 역시 최근에 정말 많이 깨닫고 있다.)     


시작에서 자기계발서에 대한 개인적 단상을 주절거려 보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몰입’이라는 개념이 단순한 성공신화나 스토리를 열거하며 이래라저래라 하는 표면적 자기계발서스러운 충고와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몰입 경험에 주목하고, 또 이 몰입이라는 개념을 좋아하는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대로 이것이 개인의 인생에 있어 궁극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적 가치와 맞닿아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덧1) Think Hard와 몰입에 관련해서 내가 정말 사랑하는 동영상 하나.

미드의 ‘빅뱅이론’의 에피소드 중 한 장면인데, ‘물리학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라는 제목으로 학내사이트에 올라온 적도 있다.

 

 

 

우리 인도청년 라쉬가 비장하게 왈, “Let's buckle down and work!”.

 

그러나 그 work가 사실은 think hard임을 아주 제대로 진하게 보여주는 영상이다. 이 뒷장면은 보면 둘이 아주 수염이 지대로 자란 초췌한 모습으로, 보드의 물리 식에 대해 아주 치열하게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완전 ㅋㅋ.  


덧2) 이 책에서 내가 아주 좋아하는 구절

“난 말야, 요즘 온통 그녀 생각뿐이야. 그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 달리 설명이 필요 없겠지? 그런데 문제는 밤낮으로 그녀만 생각하다 보니 실제로 그녀를 만났다 헤어져도 내가 실제로 그녀를 만난 것인지, 아니면 나 혼자 상상을 한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지?”  
 

 

아니! 전혀.. 문제가 있는 게 아니야. 사랑에 빠져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으면서, 몰입의 경지를 꾸밈없이 표현해주는 그런 느낌. 몰입은, 몰입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강렬하고, 뜨거운 연애이며 사랑이다. 그런 사랑의 황홀함이라.. 연구하는 것에서 느낄 수 있으면 최상일텐데.

 

 

덧3)

몰입 경험, 즐거움 그리고 그 몰입 경험에 이르는 방법 역시 알지만, 여전히 몰입의 대상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많다. 연구문제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깊은 벽 같은 것이 존재하는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건 두렵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기분 탓일까. 뇌가 물이 되어 수중상태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는 느낌이 든다. 

 

  1. RAVer 2010/01/20 07:42 답글수정삭제

    예슬아, 미드 이름이 '빅뱅이론'이야? 이 장면 정말 인상적이다! 뒷 장면도 보고 싶은 걸!

  2. 최예슬 2010/01/20 15:19 답글수정삭제

    이거 Big bang theory라고 꽤 유명한 미드인데 완전 웃겨요ㅋㅋ
    이건 시즌3 에피소드4에 나오는 장면인데, full version 동영상도 있으니 원하시면 보내드릴 수도 있다는 ^^

  3. RAVer 2010/01/20 17:03 답글수정삭제

    예슬아, 괜찮은 글은 다음 등에 트랙백하자. 이건 정말 괜찮은 듯... 특히 빅뱅이론 동영상이 정말 딱 맞아떨어져서 하이퍼텍스트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글인 듯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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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41552918.jpg이미지출처 : walden3.kr

짧은 단상 정도만 남겨놓아 아쉬운 책들...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2007. 10. 01 / 부키

 

 

 

 반미, 반신자유주의를 주창했다는 이유로 국방부 불온도서에 지정된 것이 알려져 매우 주목받았던 책. 그 덕에 홍보 마케팅이 톡톡히 된 듯 하다. 얽혀있는 이런저런 스토리를 떠나서 꼭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캠브리지대 경제학 교수 장하준의 세계 경제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지난 6월에 이 책을 읽고 난 뒤 세계의 경제흐름과 역사, 현 상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경제에 눈을 돌릴 수 있는 계기의 불씨를 만들었다고 보는 게 좋겠다.

 

덧1) 여름에 이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 이런 책 한권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끊임없이 생각했었다. 역사의 흐름을 주제와 밀착시켜 깊이있게 엮어나가면서, 자신의 주장을 명쾌하게 전달하는 글솜씨.  

덧2) ... 이 책 다음에 장하준의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시도했으나 읽히지 않아 끝까지 통독하지 못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2007. 03. 12 / 갈라파고스

 

 

아버지가 자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구성된 책.

아주 쉽지만, 명쾌하고, 전세계적으로 아플 수밖에 없는 상처를 건드리고 있다. 세계의 기아와 이를 둘러싼 자본 논리 속의 암투.  

 

특히 뒷부분의 주경복이 쓴, 신자유주의에 관련된 글은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얇지만 가치가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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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두 불평등하게 태어난다. 어떤 사람도 같은 조건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지리적으로 제각각, 시기적으로 제각각, 부모의 성격과 경제적 환경 면에서도 제각각. 그런데 유일하게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자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시간이다. 사실 주어진 인생의 길이도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100세를 넘어 살고 어떤 사람은 일찍이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매일매일 살 있는 시간은 24시간으로 언제나 동일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신으로부터 같은 자원을 선물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이지만 그 시간의 밀도조차 똑같은 것은 아니다. 인터넷을 끄적거리고 오락을 하며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보내는 24시간도 얼마나 많은지! 반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책 읽고 소중한 사람을 만난 알찬 24시간도 있지.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는 24시간을 밀도 있게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 사람이다. 그런데 번역서 제목을 왜 '남자'라고 했을까? 사람이라고 하면 전혀 다른 느낌이긴 하다. 원제가 궁금하나 <Эма смранная жцзнь>... 이 책의 주인공인 류비셰프도 러시아 과학자이고 저자도 러시아 사람인지라 해석이 안 된다.

 

류비셰프가 어떤 사람인가 하면 하루 8시간 이상 잠을 자면서도 일 년 평균 60여 차례의 공연과 전시를 관람했고, 70권의 학술서적과 단행본 100권 분량의연구논문, 학술자료를 남긴 러시아의 과학자이다. 대충 이력을 훑어봐도 대체 어떻게 저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나 궁금해진다. 타고난 천재인가? 그런데 책은 바로 이 류비셰프가 남긴 일기...라기보다 시간사용일지에 그 비밀이 있음을 보여준다. 류비셰프는 26세가 되던 해부터 다음과 같은 일기를 82세 그가 죽기 전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썼다고 한다.

 

1964년 4월 7일, 울리야노프스크

곤충분류학 : 알 수 없는 곤충 그림을 두 점 그림. 3시간 15분.
어떤 곤충인지 조사함 -20분 (1.0)
추가 업무 : 슬라바에게 편지 - 2시간 45분 (0.5)
사교 업무 : 식물보호단체 회의 - 2시간 25분
휴식 : 이고르에게 편지 10분.
울리야노프스카야 프라우디 지 - 10분
톨스토이의 <세바스토플 이야기> - 1시간 25분
기본업무 - 6시간 20분
(41~42쪽)

 

저자는 류비셰프의 사망 후에 이 일기를 보게 되었고 평생의 일기를 보면서 류비셰프 삶의 비결을 찾아내고자 노력한 결과를 이 책에 담은 것이다. 인물서가 늘 그렇듯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그 사람에게서 받은 전반적인 인상이 마음에 남는다. 그러나 그가 젊은 학자에게 보낸 편지의 한 귀절은 연구자로서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나에게 강한 인상을 주어 여기에 옮겨둔다.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학자, 그것도 짧은 시간 동안 그러한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생각을 하지 않는 학자는 학자로서 아무런 가망도 없습니다. 이제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현재 당신이 지향하는 목표는 대체 무엇입니까? 학문 연구에서 가능한 한 최대의 성과를 거두는 것이 목표라면 반드시 깊이 사고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합니다. (163쪽) 

 

그런데 시간사용에 관한 그의 원칙은 의외로 단순하며 오히려 나로서는 지키기 어려운 수준이다. 특히 3, 4는 다른 시간관리서적에서는 잘 제시하지 않는 것이다. 10시간을 잔다고? 그리고 피로를 느끼면 바로 중단하고 휴식한다고? 많은 사람이 얘기하는 1,2,5보다 오히려 3,4가 최고의 시간관리의 비결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 경우 최근 1, 2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쓴다. 5가 필요하지 않나 싶고, 3,4는 잘 모르겠다.

 

1. 의무적인 일은 맡지 않는다.
2. 시간에 쫒기는 일을 맡지 않는다
3. 피로를 느끼면 바로 일을 중단하고 휴식한다.
4. 열 시간 정도 충분히 잠을 잔다.
5. 힘든 일과 즐거운 일을 적당히 섞어 한다.

  1. 최예슬 2010/01/19 22:24 답글수정삭제

    시간 사용을 위해서는 자기 상태를 잘 파악하고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깊이 사고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짧더라도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데, 그래서 3,4가 매우 중요한 듯.. 단순한 일과 공부 혹은 연구하는 것이 다른 게 또 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고.

    1년동안 느끼는 게, 2번이 연구 과정에서 아주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 같아 아쉽다는. 실제로 데드라인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시간만 촉박하게 주어지는 것들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특히 1+2=의무적이면서 시간에 쫒기는 일은 쥐약 ㅋㅋㅋ

    의무방어도 잘 해야할텐데.. 자꾸 저도 배째라는 식으로 나가고 싶어져서 큰일..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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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번째, 후불제 민주주의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2009. 03. 04 / 돌베개

 

경제학 까페 이후, 꼭 한 번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한 책이다.

최근 이슈화되기도 한 책에서 유시민이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었다. 헌법 ‘에세이’라는 말이 부제로 붙어 있듯이 이 책은 유시민의 정치시절의 회고록이자 그가 정치인 시절 가졌던 울분을, 마치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그리 흥분하지 않은 말투로 자근자근 털어놓는 것을 듣는 느낌이다. 또한 얼마 전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한 이 시기에 이 책을 만난 것은 일종의 적시성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키워드를 가진 아주 작은 챕터별로 나누어진 책은 읽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다. 너무 잘게 나누어져 있고, 아주 쉽게 쓰여졌기 때문에 조금은 지루하기도 하지만, 책의 끝에 이르면 매우 유기적인 하나의 흐름을 가진 호소력 있는 하나의 주장을 전달받은 느낌이 든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비용을 다 지불하지 않은 ‘후불제 민주주의’다. (개인적으로 이 단어는 정말로 위트 있으면서, 전혀 가볍지 않은 센스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외세의 힘으로 이루었기 때문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 1948년 이후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이 책은 그 이후 일어난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과 관련된 이야기를 에세이처럼 풀어놓는다. 이곳에는 헌법에 대한 해설을 골자로 하여 자신의 국회의원, 장관 시절의 경험담, 자신이 모셨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연민과 존경 그리고 대변과 질타(책 출간 이후 얼마 안 되어 노무현이 자살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슬프다), 차기 정부인 이명박 대통령의 반민주주의적 처사에 대한 분노, 진보와 보수의 이념 대립에 대한 안타까움 등이 골고루 녹아있다.

 

 이 책에서 얻은 것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다.

첫째, 노무현 정부에 대한 이해이다.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자유주의를 이념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했던 정부. 미국과의 정치적 관계와 IMF이후라는 경제 상황, 지지기반이 약한 상태에서 보수 세력에 맞서고, 거대 보수언론과 대적해야 했던 참여정부. 전반적인 상황에 대하여 '유시민'이라는 사람의 눈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무지한 나에게 일종의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정치인의 생리이다. 유시민이 자신의 국회의원, 장관 재임 시절의 상황을 현장감 있게 펼쳐놓으면서 정치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며 의사결정을 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마냥 비난하던 습성에서 벗어나 정치인들이 어떠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며, 어떠한 면에서 무지하여 비판받아야 하는가를 어렴풋이 수 있다.

 셋째,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명박 정부가 무너뜨린 것을 보고, 무엇이 앞으로 우리가 지켜나가야 하는가에 대해 느끼게 된다. 아마 이 부분은 유시민이 이 책을 집필하면서 독자에게 가장 강력하게 어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아슬아슬하게 쌓아올린 민주주의와 그 원칙이 보수 세력이 집권하면서 한순간에 무너져가고 있는 현실을, 부디 눈을 뜨고 ‘알아주고’, 그 뒤에 ‘분노하고’, 나아가 ‘싸워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악의 평범성, 썩은 시스템 속에서 썩어가는 사과 이야기를 마지막의 에필로그로 붙인 것은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썩은 시스템 속에서 함께 썩어가는 현실을 인지하고, 제발 함께 썩지 않고 서로 손을 잡고 선을 구현하자는 그런 메시지.


덧). 인상 깊은 부분은 ‘장하준’ 챕터다. 유시민은 장하준을 상당히 현명한 경제학자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사다리 걷어차기’ 이론은 일반론이며 우리나라에서 한미FTA를 무조건 반대하는 논리로 끌어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얻은 매우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신자유주의에 관해서는 무조건 반대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구체적인 현실 맥락에서 어떠한 입장에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봐야한다는 것이 유시민의 생각이다.

 

 

 

  1. RAVer 2010/01/14 23:42 답글수정삭제

    마지막 부분과 같은 기조 때문에 사실 노무현 정부는 보수 쪽에서도 진보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는 평을 어디선가 읽은 것 같네. 그런데 그게 원래 그와 그들의 성향이었을까? 아니면 정권을 잡은 이후 새롭게 갖게 된 관점이었을까?

    책을 읽지 않아 유시민이 어떤 논리와 근거로 평했는지 알 수 없지만, 사실 유시민은 사실 한미FTA를 추진한 무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으므로 그의 주장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의심해 볼 필요가 있을 듯. 그와 그들은 처음부터 장하준 식의 주장과 다른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한미FTA를 추진한 것일까? 한미FTA를 성사시켰기 때문에 (혹은 그 이후에야)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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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째, 블링크

 

블링크: 첫 2초의 힘

말콤 글래드웰

2005. 11. 20 / 21세기북스

 

 

일종의 심심풀이용으로 단숨에 읽은 책.

"아웃라이어"와 " 티핑포인트" 2권의 책을 읽었더니 말콤 글래드웰의 서술 방식은 이제 익숙한 듯하다.

 

 ‘첫 2초의 힘, 블링크’는 어떤 상황을 맞닥뜨린 짧은 몇 초의 순간 직관적 사고에 의해 전체를 판단함을 뜻한다. 주의! 이것은 직감이 아니다. 단순히 ‘감’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다양한 경험에 의해 축적된 직관적이지만 순간적으로 내리는 종합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부부의 15분 대화만을 보고도 15년 후 결혼생활을 예측할 수 있다, 오랜 만남보다 방을 5분 보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성격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등. 또한 그러한 순간 판단은 의외로 매우 정확하다! 마치 첫인상을 보고도 사람의 많은 부분을 판단할 수 있듯이. 놀라운 것은 오히려 사고할 있는 시간이 많이 주어질수록 잘못된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잡다한 이미지가 개입하여 판단능력을 흐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블링크의 힘이 강력한 것은 이것이 허무맹랑한 ‘찍기’가 아니라, 계속되는 경험과 노하우로 인해 쌓여진 전문성이 무의식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순간적으로 발현되어 ‘감’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전문성 연구가 말해주듯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감이 뛰어나다. 그것은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노하우다. 상황을 아주 ‘얇게 조각내어’ 판단하는 힘이다.

 

 이처럼 블링크의 힘은 우리의 삶에서 강력하지만, 흔히 말하는 첫인상의 실수가 항상 작용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글래드웰은 블링크의 위험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모든 일에 있어 ‘빠르게, 그러나 여백을 두어라’고 말한다. 짧은 순간 동안,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냉정을 찾아 생각하고, 상대의 마음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래드웰의 매력은 아주 단순하지만 신선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풍부하고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풀어나간다는 점이다. 그러나 티핑 포인트와 관련된  전의 글에서도 밝혔지만, 글래드웰에게서 받은 인상은 변하지는 않았다. 적당히 지적 유희를 즐기면서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여가용으로는 제격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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