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 천 가지 성공에 이르는 단 하나의
길>
번역서이기에 달인이란 말의 원제가 무엇일지 궁금해 찾아봤다. MASTERY다. mastery는 어떤
대상에
대해 완전한 지식이나 이해를 가지고 있거나 어떤 대상에 대해 완전한
지배력이나
힘을 발휘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그러나 이 책의 원제에서 더
주목할
부분은 '천 가지 성공에 이르는 단 하나의 길'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문구로
번역된 부제이다. 영어 원제는
The key to success and long-term
fulfillment이다. 영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자면 '성공과 장기간의 충만함에 이르는
열쇠'
정도가 될까? 사실 우리 말로 fulfillment를 번역하기가 마땅치 않다. 편집자
입장에서
볼 때 지금의 번역 제목이 훨씬 마음에 들 것 같긴
하다.
제목 얘기를 길게 한 것은 영어
원제가 이 책의 내용을 훨씬 잘 대표하기 때문이다. 한글 제목을 보면
흔한 성공비결서인 듯하다. 달인을 최고로 대체해도 될 듯하다. 그러나 책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
여기서 달인(master, mastery)은 최고를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어떤 분야에서 높은 수준에 이른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 때 수준이란 기술이나 지식 차원의 상대적 위치가
아니다. 기술과 지식이 달인의 길에 이른 사람을 확인할 수 있는 충분
조건은 아니다. 저자 George Leonard에 의하면 달인은 곧 연습의 달인이다. 그
분야의 활동 자체를 즐기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자 하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전에 늘 우선되는 장기간의 정체기, 장기간의 연습 기간 또한
즐기는 사람이다. 오히려 인생의 행복, 책의 제목을 따르자면 장기간의 충만함은 바로
그 정체기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성공을 다루는 책이 아니라, 실은 실패를 다루는 책이며, 성공에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성공의 수준과 상관없이 그 과정에 올바로 들어서는 방법을
다루는 책이다. 저자의 주장을 확대하자면 현재의 수준과 상관없이 특정한 기술이나 지식을
배워가는 초입의 사람조차도, 기나긴 정체기 속에서 기다릴 줄 알고 그 안에
존재하는 다양함과 미묘한 변화를 의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는 달인의 길에
들어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교육학에서 나선형 교육과정으로 알려진 개념과 흡사하다. 예컨대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이제 막 방정식을 배우는 학생은 비록 수학 분야의 성숙도와 비교해 볼 때 턱없이 낮은 수준에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최고 수준의 수학자가 난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수학적 발견을 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방정식을 배울 수 있고 또 그렇게 배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나선형 교육과정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교육의 효과성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학생의 심리적 발달과 건강 측면에서도 중요한 개념이다. 왜냐하면 수학자가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수학을 공부할 수 있다면 그가 수학을 보다 즐거워하고 그것의 논리적 탄탄함에 경이로움을 느낄 가능성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수학을 접한 학생은 수학적 사고라는 것을 제대로 몸에 익힐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수학의 사고 방식'을 익힌 사람이라면 비록 현재의 수준이 방정식이든, 미적분이든, 수백년 된 수학의 난제이든 그는 이미 달인의 길-경지에 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지 레오나르드는 이와 같은 설명을 위해 합기도를 직간접적인 메타포로
많이 사용하였다. 그런 점에서 볼 때 The key라는 단어도 실은 다소
독자를 의식한 단어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동양적 의미의 길, 道라는 뉘앙스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면 The way가 더 적당했을 것 같다.
이와 같이 최종적인 결과가 아닌 그 과정 속에
인간의 궁긍적 행복이 있고, 역설적이게도 그와 같은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최종적인 승자가 된다는 요지의 책이 또 있다. 바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라는 저자로
대표되는 '몰입'에 관한 책들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저자로는 황농문 교수의 책이 유명하다.
이들 책은 합기'도'를 메타포로 한 이 책과는 다른 방식으로, 실제적 문제해결의
원천으로서 몰입을 주로 심리학적 접근으로 보여준다. 결과를 무시하지 않으면서 과정에 집중하고
그 과정이 인간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달인mastery과
몰입flow은 맞닿아 있다.
어느 개그맨의 외침처럼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달인과 몰입 개념은 1등에 오르는 얄팍한 속임수가
아닌 진정한 道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때로는 뚜렷한 성과가 없는
지리한 반복기간과 실패의 순간조차 사랑하게 되는 순간, 우리의 가슴과 영혼이 충만해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by R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