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춤에 빠져들다

 

춤에 빠져들다 (탱고에서 살사까지 재미있는 춤 이야기)

이용숙

2004. 04. 25 / 열대림

 

 

 

살사를 배우면서 그 역사를 알고 싶어 선택한 책.

 

여러 춤에 대해 나열하고 있는 책, 탱고, 라틴댄스, 플라멩코 등. 춤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알 있다. 탱고라는 것이 아르헨티나 이민자들의 역사에서 비롯했다는 것이 인상깊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의 이민자들이 구애를 위해 추던 춤으로 그 당시 비참한 하층민들의 애환이 담겨있는 비장미가 있는 춤, 탱고. 이 책을 봐도 그렇지만 점점 탱고가 추고 싶어진다. 아무래도 정열적인 살사보다는 묵직하고 절제되었지만 통렬한 비극미가 있는 탱고가 나의 취향에는..

 

그렇지만 무엇보다 나의 찬양은 바차타.

누군가는 바차타를 '어떻게 저것을 춤이라고 할 수 있나, 섹스와 다를 것이 없다' 라고 비난할 지라도, 바차타 한곡에 몸을 맡겨본 사람이라면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으리라 확신한다.. 춤 그 자체가 다른 제 3의 세계로의 문을 열어주긴 하지만.. 바차타 한 곡을 진하게 출 수 있는 두 사람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울지. 모르는 두 사람의 춤을 보는 것만으로도 때론 황홀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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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는 쟈니 캐시라는 미국의 유명가수의 생애를 다룬 영화다. 유명가수라는 것은 영화소개와 영화를 통해서 안 것이고 사실 나는 잘 모르는 가수였다.

영화는 2시간 15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이 전혀 지겹지 않을 정도로 짜임새 있게 쟈니 캐시의 생애를 그려내고 있다. 몇 인상적인 장면들을 살펴보자. 첫 번째는 쟈니 캐시가 무능한 외판원으로 살다가 레코딩 스튜디오를 찾아가 오디션을 받는 장면이다. 쟈니와 두 친구는 가스펠 송을 부른다. 그러나 스튜디오 사장에게 가스펠 송은 팔리지 않는 노래이며 더군다나 쟈니의 노래에는 믿음이 없다고 일축한다.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지만 실제로 사장이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영화다운 대사들을 내어 뱉는다. 네 영혼이 담긴 노래를 불러보라고 한다. 물론 이렇게 상투적을 말하지는 않았다. 관객을 위한 배려인지 사장은 쉽게 설명한다. 네가 트럭에 치여 죽어가고 있다. 네 삶은 겨우 1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그 때 쟈니 캐시가 누구인가, 그의 노래가 어떤가를 보여줄 수 있는 노래를 부르라고 한다. 쟈니는 공군으로 독일에서 복무하던 시절 작곡했던 자신의 노래를 부른다. 영혼의 울림. 즉각 녹음에 들어가 음반을 취입한다.

나라면 어떤 노래를 부를까? 내 인생이 한 시간이 남았다면 나라면 어떤 노래를 부를까? 내게 떠오르는 노래는 "내 영혼의 지극히 깊은데서"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 평소의 내 상태이고 싶은 노래이지 않을까? 나와 함께 자취하는 사내들이 이 노래를 나의 인생을 표현하는 나의 노래로 인정할 리 만무하다.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이 볼 때도 인정할 만한 내 영혼의 노래는 무엇일까?

인상깊은 두 번째 장면. 마약복용으로 실형을 살고 난 뒤 쟈니는 여전히 약을 끊지 못한 채 방황한다. 아내도 자식과 途?떠나간 후 방황하던 중에 호숫가 집을 산 쟈니. 이사 후 처음 맞은 추수감사절 식사 시간. 형 잭의 죽음을 전후한 아버지의 태도에 대해 어렸을 적 상처를 드러내며 아버지를 질책한다. 그러나 도리어 아버지는 그 이후 자신은 술을 끊게 되었지만 쟈니는 한 것이 무엇이냐며 무능한 인간이라고 쏘아댄다. 12세 아들에게 피묻은 형의 옷자락을 내보이며 어디 있었냐고 화를 내고 책임을 묻는 것은 분명 잔인한 짓이다. 그것은 틀림없이 쟈니에게 상처로 남았을 것이며 그 인정받지 못해 채워지지 않은 사랑의 구멍을 어쩌면 약으로 채우려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랑의 구멍을 막아준('채워진') 사람이 준 카터일 것이다. 쟈니를 향한 아버지의 태도도 잘못이지만 쟈니의 반응도 성인으로서는 건강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적어도 쟈니는 분출하였고 아주 긴 고통의 시간을 거쳐야 했지만 마약중독을 극복하고 준과의 사랑을 이룰 수 있었다.

마지막을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영화 엔딩의 자막이었다. 바로 쟈니 캐시와 준 카터가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여 35년간 부부로 지내고 같은 해에 죽었다는 사실을 담고 있는 자막. 35년이라는 기간에 놀란 것이다. 영화내에서도 묘사되듯이 둘은 가수였고 그 바닥은 그리 깨끗한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제각기 고통을 겪었기 때문인가? 그런 풍토속에서도 35년간의 결혼생활을 이어간 것이다.

결혼은 누구와 하는 것이 좋을까? 말이 통하는 사람이면 된다는 사람도 있고 돈이 많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성품이 좋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말'도' 통하는 사람, 돈'도' 많은 사람, 성품'도' 좋은 사람인 경우가 많을 것 같다. 쟈니는 자신이 가장 비참할 때도 성공의 길을 걸을 때도 준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전한다. 거꾸로 준도 마음을 여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결정적으로 쟈니의 약물중독을 끊는 데 일조하고 노래를 다시 시작하도록 인도한다. 쟈니의 대답은 아마도 영혼을 울리는 바로 그 한 사람일 것 같다. 그러나 영혼의 울림은 어디서 오는가? 어떤 부분에서는 그 울림이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오히려 그 사람의 단점들이 부각될 때 그는 나의 짝이 아닌 것인가?

결혼까지의 과정이 상대를 두루두루 찾고 한 사람을 정하고 깊이 교제하며 상대방을 알아가는 시간일 것 같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시간이 된다. 그(그녀)와 내가 맞는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화를 볼 때 나는 그 발견 중에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결혼하고 아이를 가진 지금 확실히 나를 더 안 듯한 느낌이다. 사랑은 자기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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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쿠바: 잔혹의 역사 매혹의 문화

 

쿠바: 잔혹의 역사 매혹의 문화

천샤오추에

2007. 11. 01 / 북돋움

 

혁명의 역사, 쿠바.

 

여름 동안 살사를 배우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으로, 스페인 식민지기 탄압의 역사부터 쿠바의 정치, 문화, 예술 등에 대해 폭넓게 다루고 있다. 올컬러에 흥미로운 설명으로 금세 읽을 수 있었던 책. 이 책을 계기로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쿠바의 시가가 일종의 종교의식에서 왔다는 것, 럼주로 만든 칵테일 모히토, 쿠바를 사랑한 헤밍웨이, 전통음악 ‘손’에서 출발하여 미국의 대중유행적 색채가 섞여 만들어진 춤 살사, 그리고 무엇보다 혁명을 이끌어낸 피델 카스트로.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어낸 인물, 아르헨티나 출신의 영원한 라틴아메리카의 젊은 영웅 체게바라와 함께 쿠바의 혁명을 이끌었다. 이후 체게바라는 그와 헤어져 볼리비아에서 사로잡혀 처형당한다.

 

 현재 쿠바는 체게바라의 강렬한 혁명의 이미지로 대변되지만, 카스트로의 그것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려야할지는 나도 아직은 모르겠다. 현재 병세가 악화되어 자신의 권력을 세습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혁명 이후 독재는 필연적인 수순인가. 어쨌든,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정치․사회적으로 더 고찰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나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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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티핑포인트"

 

티핑포인트: 작은 아이디어를 빅트렌드로 만드는

말콤 글래드웰

21세기 북스/ 2004. 09. 14


 티핑포인트”는 어떤 아이디어나 경향, 사회적 행동이 들불처럼 번지는 마법의 순간을 가리킨다. 소수의 법칙, 고착성 요소, 상황의 힘- 이 세 가지 규칙에 의해 티핑포인트는 발현된다. 허시파피, 에어워크 등 기업의 예를 든 설명이 흥미롭다.

  말콤 글래드웰. 경영사상가이자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는 그는 재미있는 작가다. 1학기에 “아웃라이어”에서 성공을 이끌어내는 사람들을 만드는 사회적 환경과 우연, 그리고 개인의 노력에 대한 그의 캐치 센스를 흥미롭게 읽은 바 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며 거침없는 작문 센스가 돋보인다.

 

 특히 흡연에 대한 통찰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실 여기서는 티핑 포인트라는 커다란 주제와는 동떨어진 의미로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  흡연을 하는 사람이 모두가 중독자는 아니라는 사실. 이런 고착성 없는 흡연자들, 가벼운 흡연자를 치퍼(chipper)라하는데 흡연자의 약 20%가 그렇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한 번만 피면 중독이 될 것처럼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흡연문제에 들어서면, 나에게 '중독'이 아닌 '통제'의 매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나 늘 궁금했건만 흥미로웠다. 역시 뭔가 삶이나, 뭐 삶까지 거창하게는 가지 않아도 평소에 고민해오거나 자신의 생활과 맞닿은 문제에 사람은 자극받는다. 흠. 결국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의문을 품고, 생각하지 않으면 무엇을 보든, 읽든, 듣든 간에 그것이 진한 의미로 다가오긴 힘든 같다..

 

anyway,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재치, 폭넓은 자료수집은 그의 글을 반짝거리게 한다. 하지만 그 특성상 그러한 작은 포인트 이외에 묵직한 지적 유희는 주지 못하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책은 매우 재미있지만, 그 이상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아!”라는 탄성과 빙긋하는 웃음 뒤에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남지 못하는 류의 생각이다. 물론 그것이 무언가와 결합할 때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생각이 복잡하거나 신선한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지하철을 오갈 때 유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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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요덕스토리가 새롭게 단장하여 선을 보인다고 한다. 아래와 같은 소개글을 보니 옛 작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띠게 될 모양이다.

 

미치도록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공화국 사나이들의 감동스런 우정과 의리,
사랑을 전제로 한 배신과 복수, 그리고 용서의 아리아,
천상의 하모니가 만들어내는 요덕의 뮤직 넘버,
미국을 감동시킨 토종 창작 뮤지컬의 화려한 변신,
요덕과 탱크, 그리고 사랑 앞에 주저 앉는 폭력,
레미제라블과 미스 사이공의 장점들을 뛰어넘는 작품성,
북한 구원의 희망의 메시지…

 

사실 요덕스토리는 고발성 강한 작품이었는데, 러브스토리를 첫머리에 내세우는 요덕스토리는 어떤 모습일까? 4년 전쯤 요덕스토리를 보고 썼던 평을 가져와 다시 읽어본다.

 

뮤지컬 요덕스토리

 

내 부모님이 그곳에
요덕스토리는 북한에 실제로 존재하는 관리소(정치범 수용소)를 다룬 뮤지컬이다. 요덕스토리는 내용 자체보다 함께 본 사람들과 그들의 반응이 더 마음을 잡았다. 북한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자신이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 경험이 있는 친구들, 가족이 현재 북한의 정치점 수용소에 갇혀 있는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는 1부가 끝난 후 더 못 보겠다고 나가고 말았다. 미리 어떤 내용인지를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내 탓인 것 같아 참 미안했다. 그 친구 부모님이 거기에 계신 것과 그래서 안 보게 하는 게 좋겠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었는데 명단에 이름이 잘못 적혀있어서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옆에 앉은 고등학생 친구는 보는 내내 울었다. 친구에게도 같은 사연이 있는지(직계를 제외한 친척까지 따지면 전혀 관계없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그렇지 않더라도 북한에서의 경험과 여고생의 감수성이 그렇게 반응하게 했던 것 같다. 울지 않았던 친구들, 그저 재밌다고 말했던 남성동지들과 북한의 실제노래와 뮤지컬의 노래를 비교하는 친구도 같은 과정을 거쳤기 덕분이거나 건강하게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고 이미 굳어져 버린 마음 때문인 것을 안다.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직접 돕고 또 그 때문에 옥에 갇히거나 탈북자들과 같은 경로로 탈출하기도 했던 분들은 오히려 뮤지컬보다 '더 심하지'라며 얘기하신다. 그러나 더 심하게 표현할 없는 것은 뮤지컬에 포함시키기에는 관객들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을 뿐더러 사람들이 믿지도 않기 때문이란다.



공화국 요덕에도 임하소서
"주기도문"을 개사한 노래의 가사가 마음에 꽂혔다. "아버지 남조선에만 임하지 마옵시고 공화국 요덕에도 임하소서. 일용할 양식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우리로 즉결심판대에 서지 않게 하시며 다만 수용소에서 구하옵소서." 또 기독교개종자이자 락음악에 심취하여 탈북하였던 리태식은 극 중간중간 부르짖는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소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요즘 나의 기도제목이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 내게, 이 가정에, 이 민족에, 열방에 임하소서. 그러나 내가 안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는 모습이 무엇인지 내가 모른다는 것이다. 역으로 알게 된 것도 있다. 무엇이 의(righteousness)이고 사랑인지는 분별하기 어렵지만 무엇이 의가 아니고 사랑이 아닌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요덕을 비롯한 정치범 수용소가 그와 같은 케이스이다.

정치범 수용소가 의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면 요즘 보수언론에서도 문제시되는 중국의 북한잠식은 다시 생각할 여지가 있다. 북한과 남한이 통일하는 것이 북한주민들에게 최상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만 해도 그렇다. 중국이 아무 말 없이 북한에 퍼주고 소비재와 에너지, 기간산업을 통틀어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심각히 우려하면서 여전히 금강산관광, 개성공단사업, 인도적 대북 지원을 퍼주기와 살인정권유지라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통일이 되고 나면 다를까? 많은 청장년들이 우려하는 통일비용부담은 통일 이후에는 구체적인 불만으로 표출되지 않을까? 오히려 중국의 동북 4성에 편입되는 것이 북한주민들에게 더 맘 편한 길이 되는 건 아닐까?



그러나 그곳에도 생명이 나는 것은
당간부였던 아버지의 간첩혐의로 함께 요덕에 잡혀간 공훈배우(는 북한에서 봉급기준으로 차관급 대우를 받는다) 강련화가 수용소장에게 강간을 당해 아이를 낳는다. 감자를 훔쳐 먹었다고 해서 손을 자르는 곳, 탈출시도시 즉결처형되는 곳, 옥수수죽과 소금 한 숟갈로 중노동을 강요받는 곳에서. 이게 무슨 신의 장난인가. 꼭 요덕이 아니어도 그렇다. 저 북한 땅에 지금 이 순간에 생명들이 태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묻지만 나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런 세상에 어찌 생명이 계속 태어나게 하시느냐고 묻고 싶다. 배고프고 자유도 없는 북한 땅에도, 23년간 내전이 지속된 아프리카 수단에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에도 생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태어나고 있다.

그러나 어찌 이런 세상에 생명을 낳는가라는 질문은 사람에게 던지는 것이 옳다. 사람들은 최악의 비참한 현실에도 아이낳기를 그치지 않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오히려 먹고 살기가 나아질수록 아이낳기를 꺼린다. 고난 중에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배가 부를수록 정작 중요한 것, 지켜할 것이 무엇인지 잊게 되는 것은 아닐까?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나 역시 요덕수용소에서 태어난 '요덕'이에게서 희망을 본다. 그 땅에도 여전히 생명이 태어난다는 사실이 하나님이 그 땅을 지켜보고 그 가운데 함께 하신다는 증거인 것만 같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할지 모르겠지만 뮤지컬에서 암시된 대로 요덕에서 사람들이 채찍 맞을 때 예수도 십자가에서 채찍 맞으며 손이 잘려 나갈 때 예수의 손목 한 복판에도 대못이 박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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