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번째, 88만원 세대

 

88만원 세대: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2007. 08. 01 / 레디앙

 

한 2년여 전쯤에 매우 유명해진 책. 마지막 학부 학기였던 작년, 교육심리학이 끝나고 김민성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목록 중 하나였다. 올해야 겨우, 그것도 인기 책이라 예약 후 한참을 기다린 끝에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현 20대를 대변하기 위해 쓰여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면서 20대 중반의 나는 진정으로 크게 위로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요 근래에 국개론(국민 개새끼론), 20대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등 MB정부의 어수선한 시국에도 침묵하고 있는 20대에게 분노와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는 터라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학내 홈페이지에는 시국선언에 동참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토익과 학점의 노예로 전락한 대학생 개개인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이른바 386시대라 불리는 민주화의 주역들부터 광우병 촛불집회에 앞장섰던 10대 청소년들까지, 사회 정치 현실에 무심한 대학생에게 돌팔매질을 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몇몇의 무리들은 현재의 20대가 처한 상황에 대하여 일종의 변명과 자위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심화되어 가는 세계화와 자본주의, 세습되는 부, 권력, 개룡(개천에서 난 용)은 사라져가고, 좀 더 치열하게 취업에 매달리지 않으면 도태되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현실, 20대를 그 첨예한 절벽으로 몰아가는 사회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는 20대를 무능하고 게으르다고 비난하며 수십권의 자기계발서를 베스트셀러로 밀어붙이는 사회 분위기. 이 모든 현실은 짱돌과 화염병을 집어들고도 술자리의 매쾌한 시대푸념이 낭만으로 사라지며 졸업 후 괜찮은 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386세대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20대 집단에 쏟아지는 그 비난을 한 집단 구성원으로 묵묵히 맞아내며 나 스스로도 그러한 반감과 치밀어 오르는 답답함을 참을 수 없었던 터였다. 그 때 이 책을 만났다.

 

 저자는 이 책에서 왜 20대가 윗세대와 달리 사회현실에 침묵하는, 보수적인 경제동물이 되었는가를 개인 혹은 문화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특히 세대 간 경쟁이라는 사회의 노동 구조를 매우 날카롭게 분석한다.

 

 첫째, 사회경제적 환경이 변화했다. 공업, 산업이 팽창하던 시기였던 90년대까지만 해도 크게 노력하지 않고도 안정적인 직장을 얻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이 사실을 그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되겠지만. 핵심적으로, 경제구조상 대학생 시절의 학고와 짱돌크리를 낭만으로 삼아도 직장을 얻는데 무리가 없을만큼 노동시장의 공급이 풍부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둘째,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심화되고 경제 불황을 겪는 과정에서 윗세대는 후세대인 20대를 위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는데 급급하여 폐쇄적으로 변했으며 사회 제도 역시 재편하지 않았다. 청년들의 노동시장을 제도적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다른 나라 사례를 통해, 저자는 우리나라의 윗세대들이 얼마나 무심하고 청년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지 못했는가를 보여준다. 이러한 경제빈곤 속에서 20대의 독립은 점차 늦어지며 부모세대의 부의 세습이 가속화되었다. 그러나 20대인 자신들의 부모세대인 50대와의 경쟁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에 참으로 애매한 입장에 있으며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그 뿐만 아니라 셋째, 20대는 자신들의 부모 세대인 50대의 성향을 물려받아 정치적으로도 보수화되었다. 경제적 압박에 시달려 정치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나아가 보수화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럼 저자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20대여, 스스로 권리를 위해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자? 만일 그런 것이라면 이 책의 날카로운 분석에 대한 허탈감마저 든다. 날카로운 시선에 예리하게 찔린듯 하다가도, 어처구니가 없고 허무하다.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자기계발서와 토익에 매몰되기 보다는 스스로 뭉쳐서 난관을 타파하라는 것인데... 지금까지 20대의 막막한 현실을 낱낱이 열거하고도 그 시궁창에서 386세대의 기법처럼 데모라도 하라는 것인가? 아, 물론 짱돌을 들라는 것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인식, 그리고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마냥 상태로 토익책과 희망고문에 당하고만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 길을 걷기 위해 길을 아는 그런 세대가 돼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20대를 위한 기성세대의 양보. 그게 이 책의 교훈을 일 것이다. 그 면에서는 책을 덮고, 그래서? 대체 어찌 해야할 것인가, 더욱 깊어진 푸념 속에서 소주나 잔 더 해야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덧) 기성세대와의 화해는 참 쉽지 않아 보인다. 일례로 50대가 이 책을 읽는다면? 나의 부모님과 같이 ‘그래, 우리(50대)는 IMF의 희생양이야!’라는 탄식 이상의 것은 전혀 나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지금의 20대에게 해줄 말은? ‘현실이 이러니 우리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너희는 더욱 열심히 살아야해!’ (나의 부모님이 실제로 그러셨다.)

 우리 80년대 생들.. 97-8년도 IMF의 여파는 이 세대들이 10대일 때 가정의 불화와 경제적 몰락을 가져다 주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들의 어린 시절은 많은 부분에서 불안과 정신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case들이 많다. 그리고 이들이 20대가 되어 사회로 나오고자 했을때 닥친 미국발의 세계적인 경제 위기.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온갖 정치적 욕설에, 죽어버린 20대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스스로의 트라우마와 사회적 압력을 감내하며 혼자만의 굴 속에서 투쟁해야 하는 많은 20대들.

 개인적으로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IMF의 정리해고를 경험한 50대의 자녀인 20대가, 무거운 책임의식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만 해도 부모의 경제적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스스로와 싸우고 있으니. 어쨌건.. 어느 시대에나 어려움은 있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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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졸업하여 떠났지만 가끔 들락거리는 대학동아리 싸이클럽에서 존경하는 후배가 아래와 같이 추천한 것을 보고 읽게 되었다.


"이런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1. 사랑하는 우리 ○○식구들 중 사법고시(행시,외시도~)를 준비하고 있으나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으신 모든 분들!! (참고로 고@@ 변호사님의 자서전보다는 백배쯤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법, 사회, 정치 영역에 대해 관심이 있고 특히 평화주의, 인권, 소수자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이 있으셨던 분    3. 평상시 뉴스에서 검찰과 경찰의 싸움, 수사권 독립 등 현안들을 다룰 때 영 관심이 없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분들    4. 개강이 다가와서 교양도 쌓을 겸, 또 신앙에도 도움될 만한 책 한권 찾던 분들 이런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맘잡고 반나절이면 다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꼭 읽어보세요.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게 아니니까 걱정도 붙들어 두시구요. :)"


저자 김두식 교수는 부당한 법조계의 현실에 맞서 싸운 의로운 법조인의 경력을 쌓은 사람은 아니다. 책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무시하는 정권과 그에 협력한 법조계에 맞서 싸운 인권변호사도 아니다. 오히려 잠깐의 검사 생활 후에 그 생리를 견디지 못해 사임한 후 특수교육을 전공하는 아내를 위해 가사에 전업하다 등처가로 전락한 자신의 모습에 놀라 뒤늦게 코낼대에서 법학대학원 석사를 취득한, 어찌보면 나약한 인간군상 중 한 명이다. 역시 나약한 인간군상 중 명에 지나지 않는 내가 보기에 검사가 되어 그것을 버릴 수 있었던 그가 부럽지만. ("버리기 위해서는 가진 것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눈 앞의 목표를 위해 무언가를 외면하고픈 순간에 떠올리는 비겁한 변명일까, 진실일까?)


<헌법의 풍경>은 책의 제목에서 풍기는 냄새와는 달리 헌법을 전반적으로 훑어주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헌법의 정신,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 무엇이고 그것이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권의 변화, 법조계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훼손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것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구현되어야 할 것인지를 법조계를 떠난 자유로운 법조인으로서 거리낌없이 표현하고 있다.


책을 읽은 후 크리스찬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헌법의 기본권의 관계를 묵상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헌법을 최대한으로 구현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 땅에 이루는 것과 일치하는 것일까? 어디까지나 비고시생으로서 가능한 얘기지만 민법, 상법, 형법 등 나로서는 잘 알지 못하는 각종 법률과 판례보다는 헌법이 훨씬 묵상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다 읽어갈 무렵 이 책을 선물하려던 친구 한 명에게 책 얘기를 슬쩍 꺼냈다. 자유터에서 만난 새터민 친구인데 '그 책도 읽어보고 또 다른 책도 읽어봤는데 거긴 또 다른 얘기가 있더라구요. 그 분 얘기가 한 40%정도는 맞는 것 같았어요.' 평소 독서량이 상당한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아는 척 하려던 내게 돌아온 대답은 가슴을 찔러 부끄럽게 한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은 한편으로 희망의 보자기를 건드리는 것이기에 반갑다. 나를 부끄럽게 하는 새터민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니, 어떤 새터민을 만나든 호의호식 속에서 이미 주어져 있는 것들이 얼마나 잔에 넘치는 기회인지를 망각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깨어진 마음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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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년 3월 26일,
나은 것 같던 감기몸살이 도져 열이 다시 끓기 시작했다. 같이 사는 친구들은 왁자지껄한 소음을 발생시켰다. 컴퓨터?DVD플레이어는 1시간이 넘어가자 헉헉대며 끊겨댔다. 최악의 조건였지만 500원에 영화 한편 보는 시대에 1,500원에 빌린 DVD의 연체료로 800원을 줄 수는 없다는 일념에 기어이 다 보고 말았다.

생각케 하는 한 장면. 통일이 만약 2000년 6월 15일의 남북정상회담의 형식처럼, <간 큰 가족>의 긴급중대발표처럼, 정상간의 결단에 의해 전격적으로 선언된다면, 남북의 국민모두는 한 순간 김노인(신구)처럼 환희의 기쁨을 누리겠지. 놀라운 대화합의 순간, 마지막 분단국의 평화적 통일.

그러나 참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주제가 통일이다. 북한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거쳐 연합 그리고 완전한 통일을 이루는 점진적 개방과 통일을 낙관하는 무리도 있다. 북한붕괴 후의 시나리도 중국흡수설, 남한흡수통일, 유엔신탁체제 등 여러 가지로 갈린다.

그럼 우린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러나 이 질문에 '그게 나랑 무슨 상관?'하며 고개를 돌리는 현상이 가장 난점이 아닐까? 남북한의 대립이 독재정권 유지에 유익한 구실이 되었던 시절에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남북한 간에 인적, 물적 교류가 늘어나 통일을 가깝게 바라볼 수 있는 때 통일은 머나먼 주제가 되었다. 무관심한 사람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 어쩌면 이 <간 큰 가족>도 그것을 위해 계획된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통일부와 현대아산이 금강산 촬영 등을 허가하고 지원한 데는 그런 명분이 내세워졌을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당연한 얘기인 것 같지만, 시나리오별 준비가 필요하다. 점진적 개방과 통일 시나리오는 정부에 의해 오히려 충분히 짜여진 느낌이다. 단기간내 북한붕괴, 중국의 북한경제잠식 후 영향력 확대 등에 대비한 정교한 시나리오도 짜여져 있을까? 궁금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조명남 감독이 의식했던 안 했던 <간 큰 가족>은 통일 후 영화사에서 통일과 관련된 영화를 언급할 때면 회자될 테지.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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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베네수엘라혁명연구모임

2006. 12. 04 / 시대의

 

 

이전에 읽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쿠바, 잔혹의 역사 매혹의 문화(천샤오추에)"와 연결되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

최대 석유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미 제국주의와 자원의 사유화를 통해 기득권 세력을 유지해오던 보수 세력의 횡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1989년,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물가가 급등한 것을 계기로 수도 카라카스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났고, 군인이었던 우고 차베스는 몇 번의 쿠데타 끝에 1998년 민주적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의 행보는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석유산업의 국유화를 통한 빈민구제정책이다. 그는 외국자본에 종속되어 기득권의 지배하에 있었던 석유산업을 국유화하여 그 세금을 빈민층을 위한 교육․의료에 적극 투자하였다.

 둘째, 볼리바르 정신이다. 19세기 스페인으로부터 남미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볼리바르의 정신에 입각하여 그는 볼리바리안 클럽이라는 자발적 민중 학습 공동체를 조직한다. 민중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획득하고 사회․정치적인 참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조직으로, 순수하게 자발적인 형태로 이루어진다.

 셋째, 반미, 반제국주의다. 그는 적극적으로 미국에 대항하며 라틴 아메리카 전체의 경제, 정치적 협력을 이끌어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쿠바의 전 지도자였던 피델 카스트로는 그와 뜻을 같이하는 혁명의 동지이며 그는 볼리바르 등 다른 남미의 사회주의 지도자와 석유 산유국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패권주의, 자본주의에 맞서는 새로운 정치 체계의 대안으로써 베넬수엘라의 혁명과 우고 차베스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차베스 실험의 역사적 모습을 그려내는 한편(물론 그 시선 자체에도 객관화라기보다는 강한 영웅화, 존경이 내포하고 있음을 눈치챌 있다), 신자유주의, FTA, 비정규직 등 사회 현안에 대한 독설 역시 발견할 수 있다.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빈민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다”


 

덧) 이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 .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가 나를 뚫어져라 보는 느낌에 깨어나다. 옆자리에 한 50대로 보이는 자그마한 아주머니가(매우 곱상하게 생기셨다) 나와 이 책을 뚫어지게 보더니 머뭇머뭇. 나에게 묻는다.

 “차베스, 이 사람 베네수엘라 대통령인가 그렇지요?” , “아.. 네;”

 그러더니 느닷없이, 갑자기 “아, 이 빨갱이 새끼, 나쁜 놈, 미국이랑 맞짱을 뜨긴 왜 떠. 나쁜 빨갱이” 그리고 동의를 구하는 표정?  “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아, 이럴 땐 모르는 척 하는게 만사형통이라 바로 다시 잠든 척을 했다. 저 멀리 비슷한 연배의 모르는 아줌마에게 까지 자리를 양보하는, 기독교인으로 보이는 한 참한 아주머니도 빨갱이는 싫어한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엇이 그 분의 마음에 안 든 것일까? 우리의 최우방국, 우리가 가난할 때 초콜렛을 주던 나라, 우리의 친구, 부시. 그 미국에게 맞서려는 태도? 빨강. 빨간색. 빨갱이. 그럼 보수주의자는 무엇이라 불러야하는가? 공산주의를 찬양할 생각도 없고, 자본주의를 부정할 생각도 없으며, 그렇다고 신봉할 생각도 없으며,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나 역시 모른다. 깊이 있게 고민해보지도 못했고.  다만 지하철의 안면도 없는 한 젊은이의 책제목에도 순식간적으로 폭발하는 이념. 그건 참으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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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싶어 검색 중에 브이 포 벤데타의 제작노트를 읽게 되었다. 결론적인 얘기이지만 영화보다 제작노트가 짜임새있었던 것 같고, 제작노트를 먼저 읽은 탓에 이 영화가 지닌 메시지를 더 잘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브이 포 벤데타는 요즘 읽고 있는 김두식 교수의 <헌법의 풍경>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영화였다. 김두식 교수는 국민이 국가를 두려워하고 국가가 국민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두려워하고 국민이 국가를 감시하는 것이 헌법의 정신이 제대로 발휘되는 양상이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헌법을 구현하고 법률을 수호해야 할 법조인들, 판사와 검사와 변호사들이 자신의 부와 지위의 유지를 위해 혹은 각종 인간관계에 매이거나 정권의 압력에 굴하여 직간접적으로 불법에 동참하는 현상을 분석한다. 브이 포 벤데타에도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내가 <헌법의 풍경>이란 책을 읽고 있지 않았다면 <브이 포 벤데타>의 스토리는 현실세계에 교훈은 주되 현실성이 있는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헌법의 풍경>을 통해 건전한 개인이 고착화된 구조 속에서 어떻게 그 힘을 잃게 되는가를 보았기에 김두식 교수의 경고를 읽었기에 <브이 포 벤데타>의 스토리가 아주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더군다나 3차 대전이라는 전쟁 이후를 가정한 것이었기에 그와 같은 상황이 충분히 전개될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런 가정을 할 필요도 없이 불과 10여년 전까지 우리 나라의 상황이 그랬고 현재 북한이 그러하며 세계 곳곳의 상황이 <브이 포 벤데타>의 상황과 같다. 10여 년 전이었다면 어쩌면 이 영화자체가 반정권적이라는 이유로 개봉자체가 금지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1. 최예슬 2010/01/19 22:32 답글수정삭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원작인 그래픽 노블을 가지고 있는데, 스타일이 생소해서 약간 난해하면서 영화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 메세지에 있어서 정말 느끼는 것이 많은 내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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