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번째, 후불제 민주주의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2009. 03. 04 / 돌베개

 

경제학 까페 이후, 꼭 한 번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한 책이다.

최근 이슈화되기도 한 책에서 유시민이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었다. 헌법 ‘에세이’라는 말이 부제로 붙어 있듯이 이 책은 유시민의 정치시절의 회고록이자 그가 정치인 시절 가졌던 울분을, 마치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그리 흥분하지 않은 말투로 자근자근 털어놓는 것을 듣는 느낌이다. 또한 얼마 전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한 이 시기에 이 책을 만난 것은 일종의 적시성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키워드를 가진 아주 작은 챕터별로 나누어진 책은 읽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다. 너무 잘게 나누어져 있고, 아주 쉽게 쓰여졌기 때문에 조금은 지루하기도 하지만, 책의 끝에 이르면 매우 유기적인 하나의 흐름을 가진 호소력 있는 하나의 주장을 전달받은 느낌이 든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비용을 다 지불하지 않은 ‘후불제 민주주의’다. (개인적으로 이 단어는 정말로 위트 있으면서, 전혀 가볍지 않은 센스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외세의 힘으로 이루었기 때문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 1948년 이후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이 책은 그 이후 일어난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과 관련된 이야기를 에세이처럼 풀어놓는다. 이곳에는 헌법에 대한 해설을 골자로 하여 자신의 국회의원, 장관 시절의 경험담, 자신이 모셨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연민과 존경 그리고 대변과 질타(책 출간 이후 얼마 안 되어 노무현이 자살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슬프다), 차기 정부인 이명박 대통령의 반민주주의적 처사에 대한 분노, 진보와 보수의 이념 대립에 대한 안타까움 등이 골고루 녹아있다.

 

 이 책에서 얻은 것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다.

첫째, 노무현 정부에 대한 이해이다.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자유주의를 이념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했던 정부. 미국과의 정치적 관계와 IMF이후라는 경제 상황, 지지기반이 약한 상태에서 보수 세력에 맞서고, 거대 보수언론과 대적해야 했던 참여정부. 전반적인 상황에 대하여 '유시민'이라는 사람의 눈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무지한 나에게 일종의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정치인의 생리이다. 유시민이 자신의 국회의원, 장관 재임 시절의 상황을 현장감 있게 펼쳐놓으면서 정치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며 의사결정을 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마냥 비난하던 습성에서 벗어나 정치인들이 어떠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며, 어떠한 면에서 무지하여 비판받아야 하는가를 어렴풋이 수 있다.

 셋째,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명박 정부가 무너뜨린 것을 보고, 무엇이 앞으로 우리가 지켜나가야 하는가에 대해 느끼게 된다. 아마 이 부분은 유시민이 이 책을 집필하면서 독자에게 가장 강력하게 어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아슬아슬하게 쌓아올린 민주주의와 그 원칙이 보수 세력이 집권하면서 한순간에 무너져가고 있는 현실을, 부디 눈을 뜨고 ‘알아주고’, 그 뒤에 ‘분노하고’, 나아가 ‘싸워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악의 평범성, 썩은 시스템 속에서 썩어가는 사과 이야기를 마지막의 에필로그로 붙인 것은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썩은 시스템 속에서 함께 썩어가는 현실을 인지하고, 제발 함께 썩지 않고 서로 손을 잡고 선을 구현하자는 그런 메시지.


덧). 인상 깊은 부분은 ‘장하준’ 챕터다. 유시민은 장하준을 상당히 현명한 경제학자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사다리 걷어차기’ 이론은 일반론이며 우리나라에서 한미FTA를 무조건 반대하는 논리로 끌어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얻은 매우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신자유주의에 관해서는 무조건 반대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구체적인 현실 맥락에서 어떠한 입장에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봐야한다는 것이 유시민의 생각이다.

 

 

 

  1. RAVer 2010/01/14 23:42 답글수정삭제

    마지막 부분과 같은 기조 때문에 사실 노무현 정부는 보수 쪽에서도 진보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는 평을 어디선가 읽은 것 같네. 그런데 그게 원래 그와 그들의 성향이었을까? 아니면 정권을 잡은 이후 새롭게 갖게 된 관점이었을까?

    책을 읽지 않아 유시민이 어떤 논리와 근거로 평했는지 알 수 없지만, 사실 유시민은 사실 한미FTA를 추진한 무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으므로 그의 주장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의심해 볼 필요가 있을 듯. 그와 그들은 처음부터 장하준 식의 주장과 다른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한미FTA를 추진한 것일까? 한미FTA를 성사시켰기 때문에 (혹은 그 이후에야)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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